한겨레 주민과 상생하는 도시재생…'마을호텔' 변신 중인 폐광촌 등록 :2018-11-23 04:59수정 :2018-11-23 07:32 [현장] 정선군 '고한18번가' 가보니 민박집은 객실·중국집은 레스토랑… 강원랜드 조성 뒤 생기 잃던 마을 기존 상권 활용해 숙박 등 서비스 골목 전체가 '누워있는 호텔' 변신 폐광촌 '18번가의 기적' 일어날까 주민들 발로 뛰며 빈집 등 새단장 부수고 새로 짓는 관 주도 방식 탈피 지속가능한 '도시재생 모델' 눈길
유영자 고한18번가 마을만들기위원장 등 고한18리 주민들이 마을호텔 로비로 변신할 골목길에 서서 손을 흔들고 있다. 폐광촌의 한 작은 마을 전체가 호텔로 변신 중이다.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고한18리다. 이 마을에선 주민들이 각자의 사업장과 집을 '마을호텔'로 변신시키고 있다. 기존 호텔은 커다란 한 건물 안에서 자고 먹고 마시고 빨래하는 시설이 마련돼 있지만, 이 마을호텔은 길과 골목을 따라서 호텔 시설이 마련돼 있다. 잠은 이 건물에서, 식사는 저 건물에서, 빨래는 또다른 건물에서 하도록 한다. 물론 이들 시설은 가까이 붙어 있다. 주민들은 모든 서비스를 호텔급으로 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22일 고한읍에서 만난 김진용(47) 고한18번가 마을만들기위원회 사무국장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조금 엉뚱해 보이지만 주민 손으로 호텔마을을 만들고 있습니다. 민박집은 호텔 객실이 되고, 중국음식집은 호텔 레스토랑, 빈집은 호텔 프런트, 마을 골목은 호텔 로비 노릇을 하게 됩니다.” 인구 200명 남짓한 고한18리 주민들이 '마을호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국내 유일의 내국인 출입 카지노인 강원랜드 때문이다. 이 마을은 강원랜드와 맞닿아 있어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길은 넓어지고 인근에 새 건물도 많이 들어섰다. 하지만 주민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상가가 쇠퇴하고 인구가 줄어들었다. 주민 김해순(46)씨는 “지난 20여년간의 경험으로 보면, 기업이나 지방정부가 주도하는 대규모 개발 사업은 지역 주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폐광촌 작은 마을인 정선 고한읍18리 주민들이 지역을 마을호텔로 변화시키기 위해 낡은 집에 페인트를 칠하는 등 골목길 곳곳을 가꾸고 있는 모습.
이런 문제의식에 따라 강원랜드의 변두리로 전락해버린 마을을 되살리자고 주민들이 직접 나섰다. 주민들은 지난 1월 '마을만들기위원회'를 꾸렸다. 그러나 마을을 어떤 모습으로 변화시켜야 하는지는 주민 가운데 아무도 몰랐다. 주민들은 서울 연남동과 성수동, 경리단길 등 전국의 유명한 동네와 마을을 찾아다니며 배웠다.
그 결과로 골목을 특색있게 가꾸는 '골목형 마을관광지'로 주제를 잡았다. 하지만 정부에서 주도한 도시재생 사업이 아니어서 예산이 없었다. 고한읍사무소 등 지역의 각종 기관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지만, 처음엔 공무원들도 미심쩍어했다. 그러나 주민들이 앞장서 마을에 꽃을 심고 골목을 청소하는 등 작은 일부터 시작하자, 정부에서 시행하는 각종 도시재생 공모 사업을 소개하는 등 함께 팔을 걷고 나섰다. 
초기 사업으로 주민들은 이 지역 출신 사진작가 전시회를 동네 주민 사무실에서 열었다. 또 2년 전, 주인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빈집으로 방치된 마을 슈퍼마켓을 강원도 공간재생 사업의 지원을 받아 고한읍 유일의 사진관인 '들꽃사진관'으로 새단장했다. 이런 사업을 통해 하나둘 빈집이 채워지고 젊은 사람들이 돌아다니자 골목의 표정이 달라졌고, 주민들도 신이 났다. 이런 식으로 좁은 폐광지 골목길에서 최근 1년 사이 빈집 4곳과 낡은 집 11곳이 새로운 공간으로 태어났다.
폐광촌 작은 마을인 정선 고한읍18리 주민들이 지역을 마을호텔로 변화시키기 위해 낡은 집에 페인트를 칠하는 등 골목길 곳곳을 가꾸고 있는 모습.
대부분의 도시재생 사업이나 거리·골목길 정비 사업은 이 단계에서 끝난다. 하지만 주민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아이디어는 고한읍 주민들과 골목아카데미 사업으로 인연을 맺은 정선군도시재생지원센터의 자문위원들이 냈다. 문화예술 분야 자문을 맡은 영화제작소 '눈'의 강경환(49) 대표는 “주민들이 마을의 자원으로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모델을 원했다. 그래서 마을호텔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높이 서 있는 호텔이 아니라 길거리에 펼쳐져 누워 있는 호텔을 만들자고 말이다. 
폐광촌 작은 마을인 정선 고한읍18리 주민들이 지역을 마을호텔로 변화시키기 위해 낡은 집에 페인트를 칠하는 등 골목길 곳곳을 가꾸고 있는 모습. 마을호텔은 내년 6월 개장 예정이지만, 이미 주위에서 많은 응원을 받고 있다. 고한18리 주민들은 이 사업 제안으로 지난 9월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2018균형발전박람회'에서 국가균형발전위원장상을, 지난 10월 국토교통부가 연 '2018 도시재생 한마당'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비즈니스 분야 조언을 맡은 사회적기업 세눈컴퍼니의 김용일(49) 대표는 “마을호텔은 주민들을 내쫓지 않는 방식의 도시재생이다. 식당 주인은 계속 식당을 하면 되고, 민박집 주인은 계속 민박집을 하면 된다”고 말했다. 유영자 마을만들기위원장은 “정부의 힘있는 기관이 우리 마을을 살리지 못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기존 것을 다 없애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방식이 좋지 않다는 것도 알았다. 우리가 가진 자원을 잘 엮고 다듬어서 더 잘 살아갈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폐광촌 작은 마을인 정선 고한읍18리 주민들이 지역을 마을호텔로 변화시키기 위해
낡은 집에 페인트를 칠하는 등 골목길 곳곳을 가꾸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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